어둠 속으로

깨져버린 믿음 – 미국 예외주의

트럼프의 변덕으로 자본비용이 치솟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관세부과와 재정지출 절감 계획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미국경제는 급격히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고 금융시장에서는 주가와 금리가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 경제 성장률 예측치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상승하며 투자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고 있다.

기업경영과 투자운용은 기본적으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 베팅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고용을 늘릴지, 연구개발비를 확대할지, 인수 합병에 나설지, 신상품 생산을 개시할지 등 주요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잘못될 경우의 위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도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을수록 자본비용, 즉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격으로의 할인률이 하락하며 금융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위험 보상 수익률이 높아지게 된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의 기업환경이나 투자환경이 대체적으로 예측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은 기업규제와 자본의 규제가 비교적 적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기술과 기업들의 역동적 성장이 가능하였다는 점이 미국 예외주의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국 예외주의의 근간이 올해 들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과 예측불가능성이 경제와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자의적 관세부과는 미국경제에 대한 악영향이 휠씬 더 커 보이는 목적을 알기 힘든 정책이기도 하지만 새로 부과되는 관세율이 처음에는 10%였다가 얼마 후에는 갑자기 25%가 되기도 하고 실시 시기는 지난 달 초였다가 한달 유예되고 다시 4월 초로 연기되는 불확실성의 연속이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고 금융시장의 자본비용을 급등시키고 있다.

그림 1: 미국 정책 불확실성 치솟아
그림 1: 미국 정책 불확실성 치솟아

출처: Economic Policy Uncertainty, Matthew Klein’s Overshoot

기업들은 기업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책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수 있게 된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투자와 고용 전략을 세우고 미래의 성장을 위한 계산된 베팅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투자자들도 변화된 투자환경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불확실성은 기업과 금융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만을 높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림 2: 기업 기대심리는 악화되고
그림 2: 기업 기대심리는 악화되고

출처: ISM, Daily Shot

그림 3: 기대 인플레이션은 상승
그림 3: 기대 인플레이션은 상승

출처: ISM, Daily Shot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층에서는 이런 혼란은 트럼프 특유의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좀 더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대변한다. 하지만 트럼프 자신이 불과 5년전에 기존의 협정을 깨고 새로운 협상을 통해 얻은 캐나다와 멕시코와의 통상협정을 다시 벼랑 끝 협상으로 몰고가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인지 지극히 의문이다. 더욱이 이런 정책적 불확실성이 캐나다, 멕시코와의 협상에 한정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고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 성향으로 굳어지며 임기 내내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기업과 금융시장에 커다란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 게다가 미국내 정치적으로는 트럼프가 선거 전 다짐했던 국내 정적들에 보복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큰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 아직까지 거시지표들에서 이런 불확실성의 영향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며 급격히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소비자와 기업 기대심리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상승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지형 변화하기 시작

미국경제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면서 금융시장은 높아진 불확실성을 리스크로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망가질 듯한 완벽한 낙관론에 취해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던 미국 주식시장은 이미 고점대비 8% 이상 하락하였고 아직도 사상 최고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감안하면 조정이 끝났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더욱이 트럼프가 주식시장 성과를 자신의 정책 과정에 적극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가격 조정은 정책의 속도와 폭을 제어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 믿었던 “트럼프 풋”이 이제는 존재하는지 아니면 트럼프의 주가 조정에 대한 인내의 폭이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깊은 것인지 투자자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림 4: 일본 10년물 국채금리 1.5% 돌파
그림 4: 일본 10년물 국채금리 1.5% 돌파

출처: Bloomberg, Trading Economics

반면,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 의지가 확인되며 일본 장기국채 금리는 지속 상승하며 달러에 대한 엔화 강세 전환이 이어지고 있다. 나토에 대한 트럼프의 반감이 독일의 재정정책에 대한 근본적 태도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 들어서는 독일정부는 국방비 지출 확대와 인프라 투자 확대 등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선언했다. 다른 유럽의 주요국들도 국방비 지출의 대폭 확대를 공언하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에 직접 수혜주인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유럽 주식시장이 10% 이상 상승하며 트럼프 취임 이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또한 딥시크에서 시작된 중국 기술주들에 대한 투자심리 호전과 정부의 경기 부양의지가 곁들여지면서 중국 주요지수는 지속 반등하고 있다. 미국 예외주의의 믿음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불확실성

지금까지의 미국 주식 및 채권시장 반응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소비심리나 기업 기대심리에 비해 대체적으로 완만하다. 아마도 트럼프 정부의 행동패턴 수정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 있거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미처 다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법률 입안 과정을 거치면서 의회에서 걸러지거나 부정적 영향이 완화되는 쪽으로 변화하길 기대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 확실한 것은 경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결국 우리나라 수출 전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세계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돈 상황은 기업과 투자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야당은 표심을 잡기 위해 좌클릭과 우클릭을 쉴 새 없이 해대고 있어 집권 후의 정책 방향성이 무엇일지 좀처럼 알 수 없다. 여당은 헌법재판소 판결에 매몰되어 정책적으로는 불능 상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이후에도 이런 정치적 불능 상태는 쉽게 해소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올 한해는 안전띠를 단단히 매고 롤러코스터 경기와 변동성 높은 금융시장을 대비할 때이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투자의 초점은 기술주들을 중심으로 했던 성장 위주에서 확실한 현금창출 능력으로 옮겨가야 한다. 성장에서 가치로의 투자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