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과 불확실성
지난 몇주간 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미국과 세계경제 그리고 자본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접는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하였다. 이는 물론 필자의 능력 부족 때문이겠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트럼프 정책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증폭되며 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정책의 파장을 분석해야 할 지 필자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4월 2일 소위 “해방일 (Liberation Day)”에 발표된 상호관세는 정책적으로 투박할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일반적 예상을 휠씬 뛰어넘는 수준의 충격이었고 곧이어 주식, 채권, 외환시장은 발작을 일으켰다. 미국 주식시장 주요 지수는 순식간에 20% 가까이 하락하였고 10년물 국채금리는 0.5%포인트 이상 상승하였다. 더욱이 미 금리가 오르는 와중에 달러가 급격히 약세로 돌아서며 미국 주식, 채권, 달러가 모두 하락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었다. 시장이 급격히 혼돈으로 빠져들자 단기적 혼란은 정책의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시장상황을 애써 외면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부과가 개시되는 당일 갑자기 관세 부과를 90일 연기하며 대상국들과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시장 혼란이 계속되며 소위 “트럼프 풋”이 발동된 것이다. 관세 부과가 단기간 유예되자 시장은 일제히 반등하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또한, 최근 몇일 동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관세부과의 예외 품목들이 연이어 발표되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걸음 더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상호무역을 완전 단절하는 수순의 100% 넘는 관세율까지 부과했던 중국산 수입품에도 예외 품목을 포함시키면서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하지만 시장의 단기적 안도감이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의 척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FT칼럼에서 마틴 울프가 지적했듯이 90일이 채 남지 않은 기간에 미국이 180여개국들과 무역협상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불가능하다. 또 새로운 무역협정이 극적으로 체결된다 하더라도 새 협정이 얼마나 유효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1기에 트럼프 자신이 주도해 개정한 캐나다, 멕시코와의 무역협정이 또 다시 무효화되고, 또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 협정이 휴지조각이 된 것을 보면 누구도 미국의 정책적 안정성을 확신하기 힘든 상황으로 경제환경이 순식간에 급변하였다.
일단 정지
관세부과가 트럼프가 원하는 세수 증대와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에 도움이 될지 분석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와 시장은 항상 최악의 정책에도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정책방향과 불확실성에는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경영과 투자운용은 기본적으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 베팅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고용을 늘릴지, 연구개발비를 확대할지, 인수 합병에 나설지, 신상품 생산을 개시할지 등 주요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잘못될 경우의 위험에 대한 충분한 확률적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도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을수록 자본비용, 즉,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격으로의 할인율이 하락하며 금융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위험 보상 수익률이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이제 미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권의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올 한해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며 급격히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소비자와 기업 기대심리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급등하고 있다.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는 자본의 흐름
최근의 미국 주가 하락, 국채 금리 상승 그리고 달러 약세의 조합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주가, 금리, 달러의 상관관계에서 보지 못한 대단히 예외적 현상이다. 특히, 전세계 금융자산 가치평가의 척도가 되는 미국 국채 금리가 마치 이머징국가 채권처럼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자본 탈출로 이어져 달러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미국으로부터 본격적인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진단한다. 지난 금융위기 후 미국 주식을 포함한 달러 자산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였고 최근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높은 밸류에이션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 자산배분의 상대적 다변화가 트럼프 정책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으로 이제야 시작된 필연적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출처: GTL Advisors
현재 자산배분의 다변화가 진행중이라는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외면 받던 유로화와 유럽의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가 최근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한 바가 크다. 이달 들어 유로화는 미국과의 금리차가 확대되었음에도 달러 대비 5% 이상 절상되었다. 또한 새로 들어선 독일 정부가 국방비와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대한 지출을 대폭 확대하며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독일 국채 금리는 일시적 상승세를 보였으나 곧 하락하기 시작했고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절상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승세를 시작한 국제 금값은 최근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을 필두로 주요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미국 국채 위주에서 다변화하면서 지속적으로 금을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으로 집중되었던 자산배분이 앞으로 얼마나 다변화될 지는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자산의 상대적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출처: LME, US FED, GTL Advisors
지난 10년 이상 투자자들의 심리를 지배해왔던 미국자산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이제 벗어나야 하는 시점이다. 자본의 흐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본시장 변동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변동성을 방어하는 전략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