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미국 채권시장

“야성적 충동 (Animal Spirit)”

2025년 초반 미국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들의 “매그니피센트 7” 빅테크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작년의 강력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1월말 저예산 고효율의 중국산 AI “딥시크 (DeepSeek)”의 출현으로 AI러쉬를 이끌어오던 엔비디아의 주가가 한때 급락하며 시장지수가 잠시 출렁이기도 하였으나 이내 투자자들의 야성적 충동이 시장을 압도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시작은 개인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경제전반에 야성적 충동을 불어넣고 있다. 트럼프 취임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발표된 OpenAI와 소프트뱅크의 합작투자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는 5,0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을 AI관련 산업에 투자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 정권하에서 잔뜩 움츠렸던 은행주들은 트럼프 2기의 규제완화를 기대하며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가상화폐 국가 준비금을 공언한 트럼프의 선거공약에 이어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주요 공직에 임명되고 본격적인 정책연구가 수행되기 시작하면서 가상화폐 가격은 이미 상상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곧 다가올 “현타 (Awakening)”

미국 경제전반이 야성적 충동에 달아오르고 있는 지금, 채권시장은 혼돈에 빠져있다. 강세론자들조차도 금리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9월 3.6%를 저점으로 올 1월 중순 4.8% 수준까지 1% 포인트 이상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더욱이 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30년 주택저당대출 금리는 7%를 넘어서고 있다. 금융위기 후 10년간 3%대를 기록하던 것에 비해 두배 이상 오른 것이다.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돌파하게 되면 부동산 관련 파산이 급증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예상은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다.

작년 가을부터 이어진 국채금리 상승세가 걱정스러운 것은 상승세가 연준의 금리인하 기조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 금리상승세는 미국경제의 강력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쉽게 치부되기도 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트럼프 2기 초반에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2% 목표치까지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연준은 트럼프 대통령이 뭐라 하든 금리인하에 애를 먹을 것이라는 예상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10년물 금리는 4.5%대 중반을 기록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5%를 곧 돌파할 듯 보이던 1월 중순에 비해 상승세가 둔화되었으나 언제든지 상승세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준의 금리는 미국의 주요주가지수들이 금리수준에 비해 얼마나 고평가되어 있는지 너무나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지금까지는 투자자들의 야성적 충동과 기업들의 낙관적 수익전망이 어우러져 밸류에이션 따위에 쉽게 영향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성장전망이 아주 조금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하는 기미를 보이면서 금리가 5%를 돌파해도 주식은 제 갈 길을 갈 수 있을까? 필자는 미국경제 성장률이 미세하게라도 하락하고 금리는 조금 더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있는 주식시장은 극히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확신한다.

혼돈을 부축이는 트럼프 2기

채권시장이 좌불안석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채권시장의 혼돈을 더욱 부축이고 있다. 우선 관세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낙관론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주로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여 전략적으로 관세부과를 위협하기는 하지만 실제 부과되는 관세는 일부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쑥불쑥 내던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관련 언급은 관세를 일종의 전략무기로 여기는 것으로 생각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또한 이런 시장의 불안감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미국 장기금리 상승을 Center for Economic Policy Research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장기채 매입을 축소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기금리 움직임에 대한 주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더욱이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는 옐렌 전장관의 단기채 위주의 자금조달을 비판하며 장기채 발행 비중을 늘릴 것임을 청문회에서 암시하였다. 현재의 미국 재정적자 추세를 감안할 때 이는 장기채 공급물량을 증가시켜 장기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근본적으로는 재정적자에 대한 불안감이 트럼프 2기 감세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현재의 GDP대비 6%를 초과하는 재정적자 추세가 지속되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GDP대비 100% 수준에서 10년안에 20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한 시장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루크 그로먼은 최근 뉴스레터에서 10년물 국채 금리가 명목성장률 (현재, 4/4분기 실질성장률 2.2% + 인플레이션 2.6% = 4.8% 수준)을 웃돌게 되면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인하하거나 명목성장률이 더욱 높게 가속화되지 않는 한 산술적으로 미국경제는 “부채의 죽음의 소용돌이 (Debt Death Spiral)”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이미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브리지워터의 달리오 역시 미국의 국가부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궤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구조조정의 절박함을 강조하였다. 달리오의 구조조정 방안은 금리를 1%로 급격히 인하할 것, 인플레이션을 4.5%까지 상승하도록 내버려둘 것, 세수를 11% 증가시킬 것, 그리고 정부 재량지출을 47% 삭감할 것을 포함하여 그만큼 구조조정의 절박함을 경고하고 있다.

재정적자의 구조적 문제는 트럼프 2기에 재정정책 유연성이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인식과는 별개로 트럼프 대선캠프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루트닉 상무장관 지명자는 재정적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는 그저 우려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전세계 금융기관들은 현재의 자본규제 체제가 무위험 자산으로 치부되고 있는 미국국채를 금리에 상관없이 매입하여 보유할 수 밖에 없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국채 수요의 상당부분이 헤지펀드등의 단기자금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자금흐름이 언제든지 시장 불안감의 증폭에 따라 급격히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금리를 아주 유심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필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트럼프 2기 주요인사들의 가상화폐에 대한 호감도이다. 물론 밈 화폐를 발행한 대통령 일가는 차치하더라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달러의 독보적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일련의 우호적 정책기조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국채에 대한 수요는 달러의 독보적 지위에 기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